Abstract
1920년 10월 독립군은 안도현으로 전투력을 보존하기위해 이동하던 도중에 추격하는 일본군과 조우하게 되었다. 독립군과 일본군은 청산리 일대 어랑촌을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졌고, 독립군은 일본군의 추격에서 벗어나 안도현 등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독립군과 일본군의 활동은 청산리 지역 일대의 작전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는 청산리 지역 일대의 작전환경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청산리 전역의 주요 전개 과정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청산리 지역은 산악지형에 조밀한 삼림이 형성되어 있었고, 기동이 가능한 도로망은 회랑형태로 되어있었다. 안도현 등과 연결된 도로는 어랑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형적 요소가 청산리 전역의 전개 과정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독립군은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탈출할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하였고, 일본군 역시 지역내 도로를 중심으로 예하부대를 광범위하게 배치하여 독립군의 탈출을 차단하면서, 독립군울 추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견 무질서 보이는 각각의 전투가 어떠한 맥락 하에 이뤄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작전적 중심에 해당하는 어랑촌 일대에서는 김좌진 부대와 東지대의 예비대가 조우하여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청산리 전역의 가장 핵심적인 전투는 어랑촌 전투였다. 어랑촌 일대는 지역내 도로망의 중심지역이기 때문에 독립군은 어랑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로망을 이용하여 탈출로를 모색하였고, 일본군은 작전적 중심인 어랑촌에 거점을 마련하고 여기에 예비대를 배치하는 등 양측의 전력이 집중되었다. 그 결과 독립군은 어랑촌 전투에서 가장 큰 전과를 여기서 거둘 수 있었다. 이후 독립군은 분산되어 계속해서 탈출로를 모색하였다. 일본군 역시 독립군 부대를 추격하고자 하였으나 지형적 제약으로 인해서 병력을 광범위하게 분산배치하여 예비대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독립군 부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립군은 안도현 일대로 탈출할 수 있었고, 청산리 전역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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