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영산강유역에서의 고분 공헌토기는 壺의 지속적인 사용과 완의 감소, 그리고 개배・유공광구소호・병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토기의 비실용성이 높아지는 현상인데 이러한 현상은 공헌음식의 量이 축소되고 그 상징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고분 제사가 바뀌어 갔음을 말한다. 3세기 전엽으로부터 약 400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복암리 3호분의 여러 매장시설에서는 제사의 공간 즉 祭場이 바뀌는 변화도 있었다. 옹관이 석실이라는 새로운 매장공간을 만나면서 옹관묘 고유의 기물공헌 방식인 관내외 공헌 전통으로부터 관외공헌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또 각 매장시설에서 기물공헌의례와 음식공헌의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가는 5단계의 변화도 발견할 수 있다. 96석실의 경우 현실 내부에서 기물공헌과 음식공헌이 모두 이루어졌지만 후기의 늦은 석실묘에서는 현실 내에 棺과 함께 기물을 공헌하고 난 뒤 그 밖으로 나와서 연도에서 음식공헌 의례를 지내는 방식으로 정형화된다. 복암리 3호분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일본의 고분제사와 비교하면 현실에서의 공헌의례와 연도에서의 공헌의례가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갔다는 특징이 있다. 후기에 이르면 연도부에서 치러진 제사에서만 음식 공헌의례가 이루어지게 된다.<BR> 고분제사에 쓰인 공헌품의 구성 내용이 피장자를 이해하는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피장자를 상징하는 기물로서 그의 무덤 공헌품을 자손들이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헌품 내에서 철촉의 비중이 큰 10호묘나 무기류는 거의 없고 91과에 달할 정도로 구슬이 많이 묻힌 7호묘의 경우가 그러하다. 10호묘의 피장자는 활쏘기에 능했던 武士로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7호묘의 피장자는 여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朱砂가 담긴 완이 공헌되어 있고 운모가 검출된 15호묘는 종교적 의례를 주관하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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