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영화의 독창성은 영화의 허구세계와 실재를 끊임없이 ‘상호이동’시키면서, 영화가 재현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의 ‘운동’임을 밝힌 데 있다. 2010년 작 〈인정받은 복제품 Copie Conforme〉은 예술작품의 진품과 복제품과의 관계, 동일인물의 허구와 실재, 진짜와 가짜 등 전작들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키아로스타미의 전작들은 영화제작현장과 영화의 허구세계를 상호이동하면서 현실의 움직이는 상황성과 현재성을 다루었다. 반면에, 〈인정받은 복제품〉은 허구세계 안에서 허구와 허구가 아닌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지금 눈앞에 ‘현시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유하도록 한다. 두 주인공의 관계는 전반부에서는 작가와 독자로, 후반부에서는 부부관계로 설정되지만, 관계의 이중성은 작품내적 필연성이나 인과성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적, 가변적으로 설정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미지와 소리의 괴리, 언어와 실재의 괴리, 인물들의 이중적 관계의 괴리를 보여주면서 영화가 그려내는 허구적 세계에 대한 믿음에 균열을 발생시킨다. 연기하는 배우들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허구인 픽션에 대한 관객의 믿음과의 괴리는 서사체계의 합리성과 논리성의 해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해체는 재현에 기초한 서사체계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사체계에 대한 재 고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된 서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사건, 개연성(probability)이나 필연성(necessity)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리라 기대할 수 있는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서사는 세계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편에 서서 어떻게 ‘서사의 의미화작용을 창조’할 것인가를 의미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아리스토텔레스 서사의 토대인 인과율을 부정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서사의 의미작용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인과율에 기초하지 않고 인물들의 상상에 의해 이뤄지는 미완성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지속적으로 ‘틈’을 만들어 내고, 관객은 픽션의 허구에 대한 믿음보다는 의심을 가지고 그 틈을 채우도록 한다. 〈인정받은 복제품〉의 영화적 가치는 영화의 허구성에 관한 새로운 반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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