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조선 후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된 김시습의 모습이 가진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는 글이다. 김시습은 조선 전기의 독특한 문장가이자 사상가로서, 오늘날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다양한 각도로 그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생육신의 한 사람이라는 김시습의 정체성은 근대 학문이 성립된 이후 외면되어 왔다. 그것은 조선 후기에 ‘생육신 김시습’이라는 표상이 정치적으로 남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BR 하지만 조선 후기 절의지사에 대한 추숭은 당시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에 세조 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시습은 그가 가진 문학적 명성으로 인해 활용도가 아주 높은 대상이었다. 그에 따라 그가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BR 한편, 김시습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성종대 신진 사림과의 교유라는 측면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최근 신진 사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조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역사 인식이 사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였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당대 세조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상과도 같은 김시습의 존재가 성종대 신진 사림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시습은 성종대 신진 사림이 갈망하는 이상적인 정치로 가는 과정에서, 불의한 세조 정권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주는 전범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러한 위상 때문에 조선 후기 생육신의 대표 인물이자 수많은 전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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