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영화 <가위 바위 보>(김수용, 1976)와 <웨딩드레스>(이혁수, 1990)를 중심으로 하여 1975년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구성된 베트남 난민 표상의 영화적 재현 양상을 분석한다. 파병 시기 활발히 이루어졌던 베트남전쟁 소재 영화의 제작은 철군과 종전이후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시기가 오기까지 소강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월남 패망’의 프레임과 ‘나라 잃은 사람들’로서의 베트남 난민 표상을 활용하여 반공 선전을 강화한 박정희 정부의 전략은 198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미디어 장을 통해 꾸준히 유지ㆍ갱신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와 <웨딩드레스>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종전 직후의 난민표상과 1980년대를 경유한 이후의 난민 표상을 각기 영화화한 작품들이다. <가위 바위보>는 빈곤 아동 실화를 극화한 1960년대의 영화들 및 1970~1980년대 소년소녀가장 담론과 유사한 태도로 베트남 난민 여성 및 아동들의 수난사를 재현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은폐하고 한국인들을 온정적인 개인들로 정초함으로써 한국(인들)이 연루된 베트남전쟁의 구조적 문제를 회피하는 장치를 겹겹이 배치한다. 이를 통해 베트남 난민들은 한국인 관객에게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적인 존재로서 타자화된다. <웨딩드레스>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베트남 난민 표상의 젠더화 작업을 호스티스 영화의 스타일로 구현한다. 국외자이자 성매매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타자의 위치에 놓인 베트남 난민인물이 온정적인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에 성공하는 과정은 남성화된 한국-여성화된 베트남 간의 가부장적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재현한다. 한국은 파병 국가로서 베트남 난민의 구호에 책임을 요구받는 위치였으나, 이 영화들은 ‘우리’는 베트남 난민을 처분할 권한이 있는 위치로, ‘저들’은 자신의 적합함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파병시기 영화들이 베트남 인민들과 한국군 간의 관계를 우열화하던 방식이, 종전 이후 난민의 재현에서는 한국군의 참전이라는 사실을 지움으로써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의 구조적 문제와 한국 사회의 책임을 비가시화하고, 해외의 전쟁 난민들을 복잡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탈각시켜 인도적인 연민의 대상으로 고립시키는 시선이 여전히 유효한 현상황을 생각할 때 이 글은 시의적인 의의를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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